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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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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다른 뜻은 북한에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림:북한국기.jpg
정치체계 인민공화제
수도 평양
위치 한반도의 북쪽
인구 2,202만 8,273명(1991년)
언어 한국어
종교 불교, 기독교
자원 석탄, 철광석
통화
북한의 주요공업지대
북한의 주요공업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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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수/주석

의회형태/단원제(최고인민회의)

국제연합가입/1992년


대한민국과의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세워진 공산주의 정권의 공식 명칭. 정권의 수립일은 1948년 9월 9일이나, 지금의 영역은 53년 7월 27일 군사휴전협정 이후에 확정되었다. 면적 12만 2,762㎢, 인구 2,202만 8,273명(1991 추정). 정체는 인민공화제(1당 독재), 수도는 평양이다.



목차

| 편집 | 자연· 인구· 행정구역

| 편집 | 자연환경

북한의 총면적은 한반도 총면적 22만 847.86㎢의 55%에 해당한다. 휴전선 이북으로부터 한반도 북방 국경 이내의 영역인 이 지역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험준한 고산지대로서 해발 2,000m 이상의 산이 60여 개가 넘고, 함경산맥· 낭림산맥· 태백산맥 등이 주축이 되어 각기 여러 지맥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산세로 말미암아 평안북도묘향산 지역과 함흥을 연결하는 선의 이북은 대부분 고산지대를 이루고 있고, 비교적 평지라 할 수 있는 곳은 평안남도황해도 해안지대뿐이다. 평야는 서해안 지대에 편중되어 있고, 동해안 지역은 산맥이 해안 가까이까지 뻗어 있다. 서해안의 평야는 북쪽에서부터 운전평야· 정주평야· 박천평야· 안주평야· 평양준평원· 온천평야· 재령평야· 연백평야 등이 있고, 동해안 쪽으로는 수성평야· 어랑평야· 길주평야· 농성평야· 함흥평야· 영흥평야· 안변평야 등이 있다. 북한 지역에 있는 하천들의 특징은 산맥고원의 경사가 심한 지역을 따라 흐르고 있기 때문에, 상류는 유속이 빠르고 수량도 풍부하여 동력자원으로서의 이용가치가 높다. 주요 하천으로는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인 압록강을 비롯하여 두만강· 대동강· 청천강 등이 있다. 지역은 기후대상으로 북온대의 남쪽에 있으며, 연평균기온은 8~12℃로서 해류의 영향보다는 대륙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따라서 겨울에는 남한지역보다 훨씬 춥고, 여름은 여름대로 덥다. 연평균 풍속은 약 2~3m/sec로서 비교적 약한 편이다. 한반도의 산림의 넓이는 전국토의 73%이며, 그 중에서 60%는 북한지역에 있다. 북한지역의 산림 식물종수는 1,100여 종이며, 그 중 교목만도 침엽수가 19종, 활엽수가 136종이나 된다. 산림에는 700여 종의 약용식물, 200여 종의 산채류, 450여 종의 공업용 식물들을 비롯하여 경제적으로 유용한 식물이 많다. 북한지역에는 여러 가지 동물이 살고 있다. 척추동물만 1,000여 종이나 되는데, 그 중 100여 종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종류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사슴· 노루· 산양· 멧돼지· 호랑이· 표범· · 늑대· 스라소니· 수달· 너구리· 오소리· 두더지· 토끼· 족제비· 고슴도치· 다람쥐 등과 새들이 있다.


| 편집 | 인구· 행정구역

북한은 총인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국내외의 각 북한연구기관들이 추계한 바로는 91년 말 현재 2,200여 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국토분단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개편을 단행하였는데, 45년 8· 15광복 당시 6개도, 9개시, 89개군, 810개 · 이었던 것을 4단계 행정체계인 , · , 읍· 면, · 로 구분하였다가, 그 후 읍· 면을 폐지하고 도, 시· 군, 동의 3단계 행정구역제로 개편하였다.



| 편집 | 정치· 외교· 군사

| 편집 | 정치

북한 파워그룹 서열
북한 파워그룹 서열

1945년 8· 15광복과 더불어 소련의 ‘붉은 군대’를 따라 소련군 대위로 평양에 나타난 김일성(金日成)은 소련 제25군 로마넨코 정치사령부를 배경으로 김책(金策)· 안길(安吉)· 임춘추(林春秋)· 박정애(朴正愛) 등과 손을 잡고 민족진영의 원로와 국내 공산주의자들을 거세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뿌리를 뻗기 시작하였다. 국내에 조직이 없던 김일성 일파는 기존의 공산주의자들을 이용하여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45년 10월 10~13일)를 개최하였으며, 이를 시발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결성(45년 10월 20일), 북조선분국의 북조선공산당으로의 개편 등 일련의 정치 공작을 통하여 46년 2월 8일 평양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조직될 무렵에는 이미 정권 창출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같은 해 8월에는 박헌영(朴憲永)의 남로당에 비견되는 북조선노동당이 결성되었고(위원장 김두봉, 부위원장 김일성), 다시 11월에는 도· 시· 군 인민대회가 열려 간접선거를 통한 조선인민회의(입법기관)가 구성되었으며, 47년 2월 다시 북조선인민위원회(위원장 김일성)가 조직됨으로써 공산정권 수립의 바탕이 닦였다. 이 조직을 기반으로 48년 9월 9일에는 김일성을 총리로 하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 소련을 종주국으로 하는 김일성 체제가 완성된 것이다. 그 후 49년 6월 30일에는 남· 북 조선노동당이 통합되었고 이어서 국내파 공산당, 남로당계 토착세력, 연안파 공산당, 소련계 2세의 순으로 숙청을 감행함으로써 김일성 유일독재체제를 확고히 하였다. 정권이 어느 정도 틀을 갖춘 50년 6월, 북한 정권은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목표로 무력 남침을 감행, 한반도는 3년간의 전화에 휩쓸렸다. 그 후 60년 광복절에는 남북연방제를 제안하는 등 유화적 제스처를 쓰면서 한편으로는 60년 12월 4대군사노선을 채택하고, 68년 1월 무장 게릴라를 남한에 침투시키는 등 평화공세와 무력시위의 양동작전을 구사하던 중, 대한민국과의 밀사 외교 끝에 72년 7월에 7· 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8월 30일에 제1차 남북적십자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듬해인 73년 6월에는 이른바 한반도의 통일방안이라는 고려연방제를 내놓았고, 75년부터는 비동맹회의 가입을 통한 외교정책으로 대한민국의 국제적 고립을 추구하였다. 북한 정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김일성· 김정일(金正日) 부자의 권력 세습체제인데, 김정일의 등장은 80년 10월 제6차 당대회 때부터였다. 김정일은 당의 핵심부서를 장악하고, 권력기구의 요직 인물들을 혁명 1세대에서 자신의 인물들로 교체시켜나가기 시작하였다. 김정일의 등장 이후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미얀마 아웅산묘소폭파사건(83년 10월 9일), 서울올림픽대회 불참(88년 9월 3일) 등과 같이 악화 일로를 치닫다가도 남북고향방문단 교환방문(85년 9월 20~23일), 남북고위급회담의 상호방문 개최(90년 9월 4일, 10월 16일) 등 극에서 극을 달려 왔다. 경제· 외교 정책의 실패, 종주국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북한 정권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편으로 급기야 카드을 이용한 외교정책을 구사하기에 이르렀고, 핵확산금지조약에의 탈퇴와 잔류 의사를 번복하는 와중이던 94년 7월 남북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정권의 창출자이자 유일한 영도자로 받들어지던 김일성의 죽음을 맞았다. 김일성의 사후, 김정일은 북한의 최고 실권자로서의 위치를 구축하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핵문제의 타결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점진적인 개방의 물결을 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 편집 | 정치이념

북한은 이른바 김일성 ‘주체사상’을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지도이념으로 표방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라는 북한의 헌법 제11조에서 노동당의 결정이 헌법에 우선함을 알 수 있고, 다시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하여 헌법에 우선하는 노동당마저 주체사상의 하위에 두고 있다. 김일성 주체사상만이 당이나 국가활동의 지도적 지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주체사상이 처음 주창된 것은 55년 12월로 대외적으로는 소련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일어나고 내부적으로는 6· 25전쟁의 패전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김일성이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한 토대로 삼았던 이론이었다. 또한 소련과 중국 사이가 이념분쟁으로 대립되는 등 사상적 혼란이 오자, 그 와중에 휩쓸리지 않기 위하여 주체사상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주체사상은 정치적 자주, 경제적 자립, 국방 자위를 그 근간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데 원용되어 왔던 것이다.


| 편집 | 통치구조

북한의 현 통치구조는 지난 72년 개헌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사회주의헌법에 기준하여 그 토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따르면 국가수반이며 주권을 대표하고, 중앙인민위원회의 수위이자 무력의 최고사령관인 주석이 그 정점에 있고, 최고인민회의와 중앙재판소가 각각 입법과 사법부의 기능을 갖는 외형상의 3권분립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나, 실제로는 주석과 노동당을 중심으로 권력구조가 집중되어 있다. 노동당은 모든 권력의 원천으로서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장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의 중핵으로서 초헌법적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헌법상 최고주권기관이며 유일한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도 실제로는 노동당 일당독재체제의 한계 안에서 기능한다. 대의원 선거조차 당이 추천한 단일후보에 대한 찬· 반 의사표시만이 가능할 뿐이다. 중앙재판소의 사법기능도 당의 정책이나 결정을 위반하는 자를 색출· 처벌하는 것을 주 임무로 삼고 있다. 설령 법령으로 제정되었다 하더라도 당의 결정은 법령에 우선한다. 북한 행정부의 구조적 특징은 중앙인민위원회라는 당· 정 협의체적 기구와 행정부 집행기관으로서의 정무원(종전의 내각)이 이중적 체계로 조직되어 있는 점이다. 따라서 그 기능도 최고 정책기관인 당정치국과 이의 조정을 받는 중앙인민위원회의 결정과 지시사항을 집행하고 있으므로, 행정부의 독자적 기능 수행은 찾아볼 수 없다. 중앙인민위원회는 72년 개헌을 통하여 만들어진 이른바 최고지도기관으로서, 과거의 최고인민회의와 내각의 중요 기능을 흡수하는 동시에, 그 구성원을 당과 내각의 인물로 혼합 편성함으로써 당· 정 연배합의 협의체적 기능을 수행한다.


| 편집 | 외교

북한 외교정책의 기본방향은 이른바 그들의 헌법 제16조에 명기되어 있듯이 북한에 우호적인 나라들과만 평등과 자주성, 상호존중과 내정불간섭, 호혜(互惠)의 원칙 아래 국가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에 우호적인 국가에 대해서는 비정치적 관계를 통한 인민외교방식의 침투외교를 강화한다는 원칙 아래 궁극적으로는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50년대까지는 소련과 중국 및 그 위성국들과만 수교하였다. 그러나 50년대 중반에 들어오자 중립을 표방하는 반둥회의가 개최되고 소련 역시 평화공존정책을 펴나가자, 북한은 일방적인 공산국가 대상 외교를 탈피하여 중립국을 대상으로 한 외교에 힘을 쏟았고, 62년 소련과 중국의 사상논쟁이 일자 대소· 대중과의 등거리 외교를 표방하고 나섰으며, 70년대에는 미중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서방국가들에 대한 외교도 강화하는 실리외교로 전환하였다. 또 80년대 들어서는 서방국가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기 위한 합영법(合營法)을 제정하는 등 적극적 대서방 외교를 전개하였으나, 90년대 들어 소련 및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함으로써 위기를 맞았다. 이의 타개책으로 91년 9월에는 남한과 동시에 국제연합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핵문제의 실마리가 풀려나감으로써 대미, 대일 관계가 정상화될 전망이다. 92년 현재 북한이 대사급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는 126개국이다.


| 편집 | 군사

북한의 군사조직은 남침 이전에는 소련군에 의하여 조직· 훈련되었다. 따라서 북한의 군대는 정치적· 사상적· 군사적으로 소련의 군사 사상과 제도를 모방하였으며, 침략적· 호전적인 성격을 정당화하면서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45년 10월 소련군 사령부의 지도 아래 보안대가 조직되었고, 48년 2월 8일에는 조선인민군을 창설하여 이를 내외에 선포하였다. 북한의 군사정책은 이른바 ‘국방에 있어 자위’라는 슬로건 아래,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의 4대군사노선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북한은 정규군 이 외에 18~45세의 노동자· 농민· 학생들로 구성된 노농적위대(勞農赤衛隊)가 있다. 또 공장 및 기업소에 근무하는 종업원 중 군복무를 마친 제대군인을 중심으로 교도대를 조직하고 있는데, 정규군 편제에 준하여 공장 및 기업소의 규모에 따라 편성되어 있다. 그 밖에 학생조직체로 붉은청년근위대가 학교단위별로 편성되어 있다. 북한에서의 징집연령은 만 16세로, 16세에 달한 모든 남성은 군에 입대하여야 한다. 복무 연한은 대체로 5~7년이며 특수한 경우에는 7~9년으로 연장되기도 한다. 군 지휘관은 김일성정치대학· 강건종합군관학교 등 각종 군사학교에서 양성된다. 북한의 총병력은 113만 2,000명인데, 이 중 육군이 100만 명의 병력으로 주축을 이루고 있고, 해군 4만, 공군 9만 2,000명 순이다.


| 편집 | 헌법

출처:중앙일보,2009.09.30
출처:중앙일보,2009.09.30


| 편집 | 2009년 인사 개편

북한은 2009년 2월 11일 국방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결정으로 인민무력부장(국방부 장관)과 총참모장(합참의장)에 김영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이영호 평양방어사령관을 각각 임명했다.


image:북인사개편2009-1.jpg

  • 출처:중앙일보,2009.02.13


‘당 속의 당’으로 꼽히는 조직지도부에는 이용철(군사 담당), 이제강(당 생활 담당) 제1부부장 양강 체제에 김경옥 제1부부장이 뛰어들었다. 그는 1990년대 중반까지 김정일 위원장의 비서실인 서기실 군사 분야 보좌역을 거쳐 이용 제1부부장 밑에서 부부장으로 근무하다 2008년 말 승진했다.

이용철은 야전 분야를, 김경옥은 군 속의 당인 총정치국을 담당하는 것으로 정보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당내에서도 군부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김성규(민방위부)·장성택(행정부)·김양건(통일전선부) 부장과 강동윤(조직지도부)·유영선(통일전선부) 부부장도 새 자리를 차지한 인물들이다.


image:북인사개편2009-2.jpg

  • 출처:중앙일보,2009.02.13


외곽 기구의 단체장들 역시 대거 물갈이됐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용철), 조선직업총동맹(김병팔), 조선여성동맹 위원장(노성실)이 새 의자에 앉았다.







| 편집 | 경제· 산업

< 2006년 현재 북한경제상황 >

북한경제.gif


| 편집 | 경제체제

북한의 경제체제는 본질적으로 물적 생산수단과 생산에 대하여 공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모든 생산수단이 국유 내지 공유화되어 있고, 개인적 소유라고 하면 소비품과 가구용품에 한정되어 있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란 생산수단인 토지, 수리(水利), 생산용구, 생산용 건물, 교통, 통신 등이 자본주의 체제에서처럼 개인의 사적 소유재산으로 용납되지 않고, 사회구성원 전체의 소유형태로 전환되는 것을 말한다.

(이 부분의 자세한 내용은 북한의 사회주의경제계획의 추진에 있습니다.)


| 편집 | 광공업

북한의 공업정책은 중공업 우선정책으로 생산관계를 이룩한 후 인민경제 5개년계획 기간에 사회주의 공업화의 기초작업에 착수하였으며, 인민경제 7개년계획하에서는 전면적인 공업화 추진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인민경제 6개년계획 기간에는 공업화의 완성을 위하여 기술혁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중공업의 편향적 발전에 급급한 나머지 다른 공업 분야나 농업 등 타부문과의 균형이 파괴됨으로써 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 특히 군수물자생산을 위한 기계공업에 커다란 비중을 두었으나 산업의 과학화, 선진기술의 도입, 노동생산성의 제고 등을 위한 제반 조치가 미흡하여 북한의 공업화 시책은 매우 부진한 상태이다.


| 편집 | 농업

영농기반면에서 볼 때 경지면적은 전지역의 16.9%에 불과하고 농지이용률도 109.9%로 나타나 대한민국의 126%에 비하여 낮은 실정이다. 농가 인구가 전체인구의 49%를 차지한다고 하지만, 중공업 우선주의로 인하여 가용인력이 공업부문 및 군사부문에 많이 투입되어 낮은 농업생산성에 노동력 부족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중공업 우선정책으로 농업과 공업간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60년대에 심각한식량부족에 부딪치게 되자, 국내 각처에 관개공사를 벌여 총 117개의 저수지를 새로 건설하고 40만 정보에 달하는 밭을 관개하는 한편, 농촌의 기계화와 농업의 과학화로 생산을 증대하려 하고 있으나, 농촌 주민의 기계조작 및 기술수준의 미숙으로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 편집 | 무역

60년대 이후 중국· 소련의 경제원조가 동결되고, 중화학공업 및 군수공업에 필요한 각종 기계설비와 원자재 및 기술도입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교역시장의 확대· 강화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의 교역시장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 시장 외에, 국제적 지위향상 및 외교적 지지와 공산세력 확보 등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3세계 시장과 경제적 이해관계, 즉 생산재 및 기술도입을 목적으로 서방권 시장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무역규모는 60년대까지는 폐쇄적인 아우타르키(Autarkie;자급자족적인 국민경제)를 고수하여 규모가 매우 작았으나, 70~8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하여 연평균 16.4%의 신장률을 나타내었다. 이와 함께 84년 9월 외국과의 경제기술교류 및 합자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합영법을 채택· 공표하고 두만강개발계획(UNDP) 등을 추진하는 등 개방정책을 취하고 있다. 91년 무역총액은 26억 1,783달러(전년대비 12.6% 감소)이고, 주 무역상대국은 소련(38.1%)· 중국(16.9%)· 일본(15.5%)이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사회의 폐쇄성, 신뢰성을 상실한 대외 이미지, 경제개방이 북한사회에 미칠 사회적· 경제적 변화 등의 측면에서 볼 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90년대 초부터 극심한 생필품 부족과 식량부족이 격화되고 있다. 91년 현재 북한의 국민총생산은 229억 달러(한국은행 추정)에 불과하며, 1인당 GNP도 1,038달러(91년 한국은행 추계, 자체 주장은 2,460달러))에 그치고 있어, 대한민국과 비교할 때 총생산에서 약 10분의 1, 1인당 GNP에서 6분의 1수준이다.


| 편집 | 금융

북한의 합영은행(합작은행)

▶ 고려상업은행(재미교포단-북한 500만달러씩 공동출자)

▶ 조선합영은행(조선국제합영총사-일본총련합영사업추진위 합영)

▶ 화려은행(북한조선중앙은행-중국인민은행 베이징.칭다오 분행이 각각 40%,60% 지분)출자

▶ 동북아시아은행(옛 ING-북한국제보험회사 공동 투자)

▶ 대동신용은행(북한 대성은행-홍콩 페레그린투자 합영)

▶ 고려-글로벌 신용은행(북한 고려은행-홍콩계 영국투자그룹인 글로벌그룹이 합영)


북한의 주요 환거래 외국금융기관

도쿄미쓰비시UFJ은행, 농림중앙금고(農林中央金庫), 중국은행, 난양상업은행, 모스크바은행, 로이드, 스탠다드차타드, 도이체방크, 코메르츠방크, 브리티시 아랍 커머셜 뱅크, BNP파리바, 스위스은행(SBC), HSBC, The Indian Bank, Nataional Westminster, 크레딧리오네, Girozentrale Vienna, National Bank of Egypt 등

| 편집 | 북한의 주요 항만시설

출처:중앙SUNDAY (2007. 9. 30)
출처:중앙SUNDAY (2007. 9. 30)










| 편집 | 사회· 문화· 교육

북한 사회가 추구하는 목표는 주민의 복지향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과 당에 대한 무한한 충성을 강요한 데 있었으므로, 개인의 생활을 희생시키는 바탕 위에서만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 편집 | 교통

제2차 7개년계획 중에 평양~남포, 나진~두만강의 철도 1,500㎞를 전철화하였고, 평양~원산, 평양~남포 간에 이어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를 완공하였다.


| 편집 | 예술

문예활동은 당책 구현, 공산주의 선전, 공산주의적 인간개조, 노동의욕 제고와 김일성 가계 우상화 등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문예정책 또한 선전과 선동의 수단으로서 문학이나 예술을 이용하고 있다. 창작활동은 이른바 사회주의헌법 45조에 규정되어 있는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혁명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슬로건 아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묘사방법이 그 기조가 된다. 민족문화의 전승면에서 볼 때 민족문화 유산을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민족문화란 우리가 말하는 민족문화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역사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원칙에 의거하여 민족문화를 그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자기들 나름대로 합리화한 것이다.


| 편집 | 교육

교육기관은 김일성이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에서 밝힌 이른바 사상혁명 수행을 위한 기본수단의 하나로서 혁명투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병영화(兵營化)· 노력장화(勞力場化) 되어 있다. 즉 교육에서 당성(黨性)과 노동계급성을 구현하고, 교육에서 주체를 세우며, 교육과 혁명실천을 결합시켜야 한다. 6· 25전쟁 복구 3개년계획에서 밝힌 지역별 학교설치 기준은 최근 많이 완화되어 (里) 단위로 인민학교로부터 고등중학교까지의 10년제 학교가 설치되었다. 2~3년제인 고등전문학교는 지역별 산업발전의 특성에 따라 군(郡) 단위로 설치하게 되어, 농촌에서는 각 군에 농업전문학교를 1개교 이상 설치하였고, 3~4년제의 단과대학, 4~6년제의 대학까지 있다. 대학은 총 273개교이다. 교육내용으로서 지육(智育)은 공산주의의 원리원칙을 습득하게 하고, 덕육(德育)은 공산주의 도덕품성을 지닌 혁명투사의 정신을 부각시키며, 체육은 국방체육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사력 강화에 중점을 둔다. 77년 9월에 채택된 `사회주의 교육에 관한 테제'에서 제시된 사회주의 교육의 내용을 보면 정치사상교양· 기술교양· 국방체육으로 분류하였는데, 그 중 정치사상교양이 가장 중요시된다.


| 편집 | 체육

체육정책은 북한 주민들을 혁명과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인한 투사형 인간으로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김일성 우상화와 국방력 강화의 수단으로, 대외적으로는 스포츠를 통한 정치외교수단으로서 이용하고자 하며, 심지어는 대남전략수단으로까지 이용하고 있다. 체육정책의 기준은 심신단련을 통한 인격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투사를 육성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체육인을 양성하기 위하여 58년 9월 1일 개교한 평양체육대학과 77년에 설립한 중앙체육학원, 그리고 73년부터 각 도에 1개교씩 설치한 고등전문학교를 두고 있으며, 교원대학과 사범대학에 체육학부가 있다. 최대의 체육시설은 김일성경기장이며, 그 밖에 지방도시인 혜산· 함흥· 사리원· 원산· 신의주 등지에 경기장을 두고 있다. 실내체육관으로는 배구· 농구· 탁구· 체조 등 11개 종목의 경기를 할 수 있는 원산· 남포· 함흥· 강서 체육관 등이 있다.


| 편집 | 매스커뮤니케이션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정부기관지인 〈민주조선〉이 있고, 잡지로는 노동당 이론지인 〈노동자〉, 통신사로는 중앙조선통신사(KCNA)가 있다. 그 밖에 조선중앙텔레비전· 수대텔레비전· 개성텔레비전 등의 텔레비전방송과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등의 라디오방송이 있다


| 편집 | 관련표제어

북핵일지

북한 핵무기

영변핵시설 평안북도 영변군에 위치한 핵시설

북한의 3대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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