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Japan)
| 일본
(Ja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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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체계 | 입헌군주제 |
| 수도 | 도쿄 |
| 위치 | 태평양 북서부 |
| 인구 | 2,496만 명(1994) |
| 언어 | 일본어 |
| 종교 | 신도, 불교 |
| 자원 | 목재, 석회석 |
| 통화 | 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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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Japan)
정치체제/입헌군주제
국가원수/국왕
의회형태/양원제
국제연합가입/1956년
언어/일본어
종교/신도(神道), 불교
자원/목재, 석회석
통화/엔
태평양 북서부, 아시아 동쪽 해상에 있는 입헌군주국. 면적 37만 7,835㎢ 인구 2,496만 명(1994). 수도는 도쿄〔東京〕이다. 상징적으로 천황(天皇)을 받드는 국민주권국가로, 섬나라라는 성격에서 예로부터 특유한 문화를 형성하고, 근세에 250년에 걸친 쇄국정치 후, 1868년 그때까지의 바쿠후 정치〔幕府政治〕를 폐지하고 근대국가가 되었다.
목차 |
국토는 홋카이도〔北海道〕·혼슈〔本州〕·시코쿠〔四國〕·규슈〔九州〕 등 4개의 큰 섬과 그 주변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토의 5분의 4가 산지이며, 평야가 적고 가파른 산지를 흐르는 짧은 하천이 골짜기를 깊게 깎아 지형에 변화를 주고 있다. 산지(山地)는 일본열도의 큰 지대구조(地帶構造)를 따라 구성되어 있으며, 태평양 쪽인 외대(外帶)는 높고 험한 산들과 깊은 V자형 계곡이 많으며, 동해쪽인 내대(內帶)는 낮은 산지와 고원이 펼쳐진다. 가장 단순한 화산 마르(maar)에서 복합화산까지 거의 모든 유형의 화산이 있다. 평야는 홍적대지를 포함하여 국토의 4분의 1에 불과하며, 간토평야〔關東平野〕· 오사카평야〔大阪平野〕 등이 유명하다. 기후는 온대계절풍으로 위도에 비하여 겨울은 저온, 여름은 고온다습하다. 대륙기단의 영향으로 연간온도차가 크지만, 이는 해양의 영향으로 완화되며, 따라서 습도가 높고 강수량이 많다. 민족은 한반도를 거쳐 건너온 퉁구스계 종족에 동남아시아에서 온 종족이나 아이누계 종족 등이 오랫동안 섞이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홍적세(洪積世) 말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신석기시대와 논농사를 영위하는 야요이문화〔彌生文化〕를 거쳐 소국가가 성립되었다. 4세기에는 천황(天皇)을 중심으로 하는 야마토〔大和〕 조정이 성립되어 전국을 지배하였다. 다이카개혁〔大化改新;645년〕으로 중앙집권적 율령체제(律令體制)가 확립되어 나라시대〔奈良時代〕· 헤이안시대〔平安時代〕를 맞았으나 1467년 이후 귀족의 장원(莊園) 소유에 의해 율령제가 붕괴되고 무사(武士)가 정치실권을 잡는 시대가 열렸다. 전국시대 말기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중앙부 통일에 성공하고 이를 계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90년 전국을 통일하였다.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에도바쿠후〔江戶幕府〕를 열고 봉건제도를 강화하였다. 즉, 장군을 정점으로 하는 바쿠한체제〔幕藩體制〕를 확립하고 사농공상의 신분질서를 엄중히 하였으며, 그리스도교를 엄금하여 쇄국을 단행하였다. 1853년 개국을 요구하며 내항한 M. C. 페리가 인솔한 미국함대의 압력에 굴복한 바쿠후는 쇄국정책을 버리고 67년 에도시대가 막을 내렸다. 68년에 왕정복고(王政復古)에 의해 새 정부를 수립, 에도를 도쿄〔東京〕로 개칭하여 수도로 정하고 이른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추진하였다. 1890년부터 1910년대에 걸쳐서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달하였고,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의 승리로 세계 열강에 올랐다. 31년의 만주사변, 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40년 다시 파시즘의 독일·이탈리아와 3국동맹을 맺고 41년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의 원폭 투하로 45년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였다. 연합국에 의해 무장해제, 민주화가 추진되었고, 우리나라의 6·25전쟁으로 경제부흥의 계기를 얻어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지금은 세계 대부분 나라의 가장 큰 무역상대국인 동시에 가장 큰 무역 흑자국이다.
일본의 헌법은 제2차세계대전 후 한때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에 의해 초안된 것으로 46년 11월에 공포되어 이듬해 5월에 시행되었다. 주권은 국민의 대표자에 의해 행사되는 대의민주체를 취하며, 국회는 중의원(衆議院)과 참의원(參議院)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권의 최고기관’으로서 영국의 의원 내각제를 채용하여 총리대신 선출권을 가지며, 모든 법률안을 심의· 결정한다. 중의원· 참의원 모두 국민의 선거로 선출되며, 중의원은 참의원에 대하여 우월한 권한을 갖는다.
국민 1인당 GNP가 1987년 이후 미국을 앞지른 일본은 세계 무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여 91년 현재 수출· 수입액 모두 미국, 독일에 이어 제3위이다. 이처럼 뛰어난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것은 마이크로 전자공학혁명이라 불리는 신기술혁신과 자원절약· 지식집약화· 안정된 노사관계 등에 의한 것이다. 이리하여 일본 경제는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얻기는 했으나 동시에 무역마찰을 비롯한 국제경제 마찰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 대외무역마찰에 관한 대응책으로서 일본기업의 다국적화와 그에 따른 문제점은 일본 경제의 또다른 과제이다. 일본의 산업구조는 제2차세계대전을 경계로 농림수산 인구의 비중이 떨어지고 70년대 후반 이후에는 3차산업의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국내 총생산의 구성비 역시 1차산업의 비중이 높았으나 55년 이후 2차산업의 비중이 커졌다. 70년대 이후에도 중화학 공업화율이 더욱 높아졌으나 2차례에 걸친 유류파동에 의한 자원절약 및 가격· 수요 구조의 변화에 따라 금속· 화학 등 기초소재 산업은 정체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가공조립 산업인 전자, 기계, 자동차, 정밀기계 산업이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정권이 2006년 9월 ‘교육개혁 구상’을 발표하면서 공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선언했다. 80년대 말 영국의 교육개혁을 모델로 삼아 ‘마거릿 대처 방식의 교육개혁’ 노선을 도입했다. 대처 전 총리는 국가가 학제 개편·교원 임용 제도와 같은 교육 인프라를 만들어 주고, 학교 운영은 자율에 맡기는 시장원리를 도입해 경쟁을 촉진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일제 36년간의 식민지통치 이후 양국간의 외교는 난항을 거듭하였으나, 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된 이후 양국관계는 특히 경제면에서 급속히 긴밀해졌다. 67년 이후 한·일 정기각료회의를 발족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73년 김대중 납치사건, 82· 86년의 교과서 왜곡사건으로 한일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83년 1월에 방한(訪韓)한 나카소네 일본 총리와 전두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일(對日) 차관교섭이 타결되었으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지문날인 강요, 차별대우, 그리고 최근에는 원폭피해자 보상문제, 종군위안부 피해 보상문제 등으로 한·일간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93년 8월 호소카와 연립내각이 수립되면서 한·일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해결해야 될 난제가 많이 있다.
야쿠자 중앙일보,분수대, 2008.1.21
해저터널 중앙일보,분수대, 2008.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