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te of Israel)
| 이스라엘
(State of Israe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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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체계 | 공화제 |
| 수도 | 예루살렘 |
| 위치 | 서아시아 지중해 연안 |
| 인구 | 533만 명(1994) |
| 언어 | 히브리어 |
| 종교 | 유대교 |
| 자원 | 구리, 인광석 |
| 통화 | 셰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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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공화제 국가원수/대통령 의회형태/단원제 국제연합가입/1949년 언어/히브리어 종교/유대교 자원/구리, 인광석 통화/셰켈
목차 |
공식 이름은 이스라엘국. 서아시아 지중해 연안에 있는 나라. 면적 2만 700㎢, 인구 533만 명(1994).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국토의 중앙을 거의 남북으로 습곡산맥이 뻗어, 북쪽의 레바논산맥과 남쪽의 시나이반도에 이어진다. 지중해 연안을 따라 좁고 긴 해안평야가 발달, 주요 거주지역이 되어 있다. 동쪽에 너비 10~20㎞로 남북으로 뻗은 요르단지구대는 대부분이 해면보다 낮은 저지(低地)이며, 요르단강이 남류하여 사해로 들어간다. 북반부는 지중해성 기후이고, 요르단지구대는 여름에 찌는 듯이 더우며, 남반부는 전체가 네게브사막이다.
주민의 90%가 유대인이고, 그 밖의 대부분은 아랍인이며, 종교는 유대인은 유대교, 아랍인의 대부분은 이슬람교이다. 공용어는 히브리어이고, 문맹률은 유대인 12%, 아랍인 30%이다.
BC 11세기 이스라엘왕국이 세워졌고, BC 10세기 전반에 이스라엘왕국과 유대왕국으로 분열되었다. BC 8세기에 아시리아에 이어 바빌로니아의 지배를 받았고, BC 6세기에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정복함으로써 바빌로니아에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인은 해방되었다. 73년 로마제국의 지배하에서 독립을 기도하였으나 실패, 망국유랑민이 되었다.
19세기 말경 유럽과 유대인 사이에 시온주의운동(유대인국가건설운동)이 일어나, 1880년부터 이민이 시작되었다. 제1차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밸푸어선언으로 영국의 지지를 얻고, 전후 팔레스타인을 영국이 위임통치하게 되면서 건국운동은 촉진되었다. 1930년대부터 나치의 박해를 피한 이민이 급증, 팔레스타인과 아랍인의 대립이 격화하였다.
1947년 국제연합은 이 땅을 유대인과 아랍인에게 분할하기로 결의, 1948년 위임통치 종료와 함께 이스라엘 독립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주변의 아랍 여러 나라가 독립을 승인하지 않자 팔레스타인전쟁이 일어났다. 이 대립은 1956년의 수에즈전쟁,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 등으로 혼미를 거듭하였다. 팔레스타인전쟁에서는 100만 명 이상의 아랍 주민이 쫓겨나 난민이 되었고, 난민 사이에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기운이 높아져, 1964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결성되었다. 1977년 이집트와 평화조약이 체결되었으나, PLO와 그 밖의 아랍 여러 나라와의 대치는 계속되었다.
1982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의 베이루트까지 침공, PLO는 레바논으로부터 철퇴하였고, 이스라엘은 서부 베이루트 난민촌에 레바논 민병대의 진입을 허용, 1,000여 명을 살상하도록 함으로써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1987년 가자지구에서 촉발된 팔레스타인인들의 반(反)이스라엘 소요 사태가 이스라엘의 강경 진압으로 요르단강 서안 등 점령지 전역으로 확산, 양측관계는 중동전 이후 최악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페르시아만전쟁(걸프전쟁) 이후 미국이 중동평화회담 중재 역할을 자청, 평화회담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도 점령지 반환과 정착촌 건설 중단요구를 거부하였으며, 페르시아만전쟁 이후 아랍권이 구심점이 없이 흩어진 틈을 타서 레바논 남부지역을 전격 침공하고, 하루 만에 철수, 회담은 원점에서 맴돌았다.
내각책임제의 공화국으로, 성문헌법 대신 12개 기본법을 보유하고, 국가 원수인 대통령은 단원제 국회에서 선출한다. 1949년 1차 총선거부터 현 연정(聯政)이 집권해 왔으나, 1977년 총선에서 보수우익의 리쿠드당이 노동당을 누르고 29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하였으며, 1983년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였으나, 과반수 획득에 실패, 9개 정당의 연정에 합의하였다. 1984년 윤번제에 따라 총리가 된 리쿠드당의 샤미르는 1990년 노동당의 페레스당수가 조각에 실패하자, 사상 처음으로 최우익내각을 발족시켰다. 1992년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2개 극우(極右) 정당 소속 의원 5명이 정부의 중동평화협상 참여에 항의, 연정에서 탈퇴함으로써 연정은 사실상 붕괴하였다. 샤미르정부가 전통적으로 최대 동맹국인 미국의 중동평화안을 거부, 팔레스타인 문제해결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자, 미국은 경제· 군사 원조를 무기로 압력을 강화하였으나, 페르시아만전쟁 때 이라크48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도 미국의 요청으로 보복을 자제하여 미국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동유럽의 공산정권이 붕괴함에 따라 3차 중동전 이래 단교하였던 헝가리와 1989년 재수교한 데 이어, 1990년 체코·폴란드와 차례로 관계를 정상화하였고, 1991년에는 24년 만에 소련과 국교를 재개하였으며, 1992년에는 중국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의무병역제로 남자 3년, 여자 2년이며, 중동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관개시설이 정비되고, 경작 수준이 높아 키부츠나 모샤브 등 농업협동조합이 발달되어 있다. 곡류· 채소· 과일을 재배하고, 낙농· 양계가 이루어지며, 채소· 과일은 주요 수출품이다. 네게브사막의 광물자원· 석유 등으로 각종 공업· 제조업이 발달했는데, 특히 다이아몬드 가공은 수출품의 29를 차지한다. 통화는 셰켈이고, 국민총생산 726억 달러(1993), 1인당국민소득은 1만 3,760달러(1993)이다. 1962년 4월 우리나라와 수교하였는데, 1978년 주한 대사관을 철수하였다가, 1992년 대사관을 재개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