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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최초작성 [Opentory1 02.16 13:22] | 마지막 업데이트 [Opentory1 10.06 10:01] 이 문서는 총 1,084번 읽혔습니다.

(1984 - )


11세때 사진. 출처:중앙일보,2009.02.16
11세때 사진. 출처:중앙일보,2009.02.16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삼남. 어머니는 김정일이 세번째 부인 고영희이다.


2008년 10월 10일께 후계자로 확정됐다고 알려졌다.


정남과 정철 등 두 형이 있지만 북한 내부의 부정적 평가와 건강상의 이유로 전면에 나서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정은을 후계자로 결심한 데는 정은밖에 다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다양한 경험을 했던 아버지와 달리 정은은 이제부터 길을 닦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운은 2008년 12월 대외 석상에 처음 얼굴을 보였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소속 윤상현(한나라당) 의원에게 비공개로 보고한 2009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김정은이 노동당 조직 관련 부서에 ‘부국장급’으로 근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정은의 후계 공식 데뷔는 이르면 내년부터 북한이 강성대국 진입 시기로 공언한 2012년 사이에 이뤄질 것으로 정부 관계당국은 분석했다.


자료에 따르면 김정은은 1984년 출생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 당국은 ‘정식으로 통학하며 수업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교수나 군부 인사를 불러 개별 교습을 받은 후 졸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은 고급장교 양성을 위한 북한 최고의 종합군사학교다. 김정은은 아버지인 김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군 복무를 한 경력은 파악되지 않았다. 관계당국은 북한이 2009년 4월부터 김정은을 ‘친애하는 김 대장 동지’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김정은 찬양 노래인 ‘발걸음’을 보급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밝혔다.



목차

| 편집 | 베일 속 인물 김정일 후계자

김 위원장의 셋째 부인인 고영희(2004년 사망)의 2남이라는 게 알려진 전부였다. 행적도 1990년대 후반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 잠깐 다녔다는 설이 돌 뿐이다. 그때도 친형인 김정철에 가려 있었다. 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철 스위스 대사도 정철을 뒷바라지하는 데 관심이 더 있었다고 한다. 생모인 고씨가 살아 있던 2003~2004년에는 형인 정철을 후계자로 추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고씨는 사망 때까지 김 위원장 곁을 지켰지만 정식 결혼을 한 정실부인이 아니다. 게다가 정은은 차남이어서 후계자로서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사생활에 대한 언급은 금기 사항이다. 고위 탈북자들조차 정운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 편집 | 김정일과 성격 판박이

김 위원장의 요리사로 있으며 김정은을 직접 만났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따르면 김정은은 김 위원장과 성격이 흡사하다고 한다. 그는 자서전 『김정일의 요리사』에서 “(정운이)나와 악수할 때 험악한 얼굴로 노려봤다. ‘이 녀석은 증오스러운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왕자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그의 성격은 이악하고(악착같고) 고집이 강하다”고 언급했다.


북한 당국자들이 “장군님은 판단을 정확하게, 결심은 단호하게, 타격은 무자비하게 하는 스타일”이라고 언급하는 것과 유사하며 정치적 야심과 강단을 소유한 인물이란 평이다. 또 농구를 좋아하며 패할 경우 패인을 철저히 분석하는 등 승부욕이 강하다고 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평소 정은에 대한 김 위원장의 애정은 남달랐다고 한다.


| 편집 | 이름표기 변경

본래 김정운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09년 정부 다국이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 이름을 김정은으로 바로잡았다. 국가정보원 등 정부기관은 '김정운'으로 써왔으나 북한 내부문건 등을 통해 김정은이 정확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편집 | 관련표제어

김정일 김정운의 부

고영희 김정운의 모

김정남 김정일의 장남

김정철 김정일의 차남

북한의 3대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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