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이란 대선부정의혹을 둘러싼 이란의 정국 혼란 사태.
2009년 6월 12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압승한 대선 직후 부정선거 의혹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1999년과 2003년에도 반정부 시위가 있었지만 이번 시위는 규모나 성격에서 크게 다르다고 평가받고 있다.
신정 국가 이란에서 종교와 입법·사법·행정 등 국정 전반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갖는 최고 지도자의 요구를 거스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는 이번 사태가 이미 선거 부정 규탄 시위를 넘어 ‘신정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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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종료 후 1시간30분 만에 첫 개표 결과가 나왔다. 최종 집계도 12시간 만에 끝났다. 3920여만 장의 투표용지를 수작업으로 집계한 것치고는 너무 빠른 속도다. 과거 선거 땐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과거 지역별로 개표가 진행됐던 것과 달리 500만 명 단위로 결과를 발표한 것도 의심스럽다. 각 후보에 대한 지역별 지지도 차이를 알아보기 힘들게 만든 것이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표밭은 가난한 농촌 지역이다. 상대적으로 대도시에선 인기가 없었다. 이 밖에 주민번호가 없어 추적이 불가능한 ‘유령 표’가 1000만 장 이상 되며, 1700만 장 이상의 예비 용지가 준비됐음에도 무사비 지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2009년 6월 15일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시위대가 진압 경찰의 총에 맞아 7명이 숨지고 여러명이 부상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6월 17일 시위대는 무사비의 선거 운동 상징색인 녹색의 손목 밴드와 머리띠를 한 채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우리의 표를 훔쳐갔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내를 행진하며 침묵시위를 벌였다.
외신들은 이번 시위에 대해
▶학생 주도였던 과거와 달리 시민이 대거 참여하고 있고
▶개혁파 대선 후보였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가 구심점이며
▶개혁·개방 세력이 계획적으로 주도하는 시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부정선거 의혹이 도화선이 됐지만 내면적으로는 이슬람 혁명 이후 30년간 이란을 통치해 왔던 집권층의 보수주의 통치 철학에 대해 누적된 반발이 폭발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젊은 층과 부유층 등이 주축인 개혁파는 이번 시위에서 이란 사회가 강경 보수로 치닫는 상황을 더 이상 묵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개혁파는 이란이 국제 사회에서 고립돼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서방 국가들부터 테러 지원국으로 간주돼 경제제재 등을 받았다. 이에 따라 최근 몇 년간 경제성장률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인권 문제도 묵은 과제 중 하나다. 이번 시위에는 이란 보수주의의 상징인 ‘검은 차도르’를 온몸에 두른 여성들도 대거 참여하고 있다. 보수주의 틀에 갇혀 있던 여성들이 인권을 앞세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6월 12일 : 대선 실시
6월 13일 : 보수 강경파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 압승 결과 발표 직후 개혁파 후보 무사비 지지자들의 부정선거 규탄 시위 시작
6월 15일 : 시위대에 대한 친정부 민병대의 발포로 최소 7명 사망. 무사비 지지자 18일까지 시위 계속
6월 19일 :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선거 공정성 주장하며 불법 시위 중단 촉구
6월 20일 : 시위대 수천 명 수도 테헤란에서 시위 강행. 민병대와 경찰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최소 20명 사망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미르 호세인 무사비 이란 전 총리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의 최고 지도자
바시즈 이란의 시위대 진압 민병대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 전 대통령
네다 아그하 솔탄 이란 시위 중 희생된 여대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