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른 뜻은 잭슨에 있습니다. |
(Michael Jackson, 1958~2009)
미국의 가수.
인디애나주(州) 에서 9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패밀리 그룹인 잭슨 파이브(뒤의 잭슨즈)의 리드 보컬리스트로 활약하였고, 솔로로서도 1980년대 미국음악계 최고의 슈퍼스타이다. 72년 〈Got To Be Three〉로 데뷔하여 변성기로 인하여 잠시 중단하였다가, 79년 실질적인 솔로 앨범 〈Off The Wall〉을 내놓아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82년에는 전세계적으로 4,000만 장의 매출고를 보인 〈Thriller〉로 각종 음악상을 석권하여 팝 뮤직계 최고의 스타로 부상하여 성공적인 히트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재산은 아동 성추행과 관련한 법정 분쟁으로 사라졌다. 네버랜드도 빚 때문에 남의 손에 넘어갔다.
2009년 6월 25일 (미국 현지시간) 심장마비(cardiac arrest)로 사망하였으며, 7월 7일 오전 8시(현지 시간) 로스앤젤레스 포리스트 론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잭슨의 시신은 2만5000달러의 14K 도금청동관에 안치됐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있는 잭슨의 별 앞과 그의 저택인 네버랜드에는 수천 명의 팬들이 찾아 꽃과 추모 카드 등을 남겼다.
목차 |
마이클 잭슨의 음악적 위대함은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의 절묘한 융합에 있다. ‘잭슨 파이브’로 활동하던 70년대만 해도 마이클 잭슨은 정통 흑인음악인 리듬 앤드 블루스를 잘 부르고 멋지게 춤을 추는 천재 소년 정도였다. 그러나 흑인음악의 메카인 모타운 레코드사에서 벗어나 거장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손잡고 내놓은 솔로 앨범 ‘Off the Wall’(1979)에서부터 음악으로 인종과 장르를 초월하려는 그의 야망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1982년 앨범 ‘스릴러(Thriller)’가 등장했을 때 팬들은 새 역사의 문이 열렸음을 실감했다. 8비트나 16비트가 아니라 32비트, 64비트로 잘게 부수어진 리듬은 무한한 스피드로 질주하며 듣는 이의 심장을 뛰게 했다. 당대 최고의 록 기타리스트인 에드워드 밴 헤일런의 폭풍 같은 기타 간주가 담긴 ‘Beat It’은 리듬 앤드 블루스와 정통 록의 환상적인 만남이었다.
그는 이후 ‘Black or White’에서 록 그룹 건즈 앤드 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에게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경쾌한 도입부의 연주를 맡긴다. 흑인의 태생적인 소울풀한 목소리와 리듬감과 백인음악인 록의 결합은 그를 흑인음악의 장벽 안에 머무르지 않게 했다. 흑인 특유의 그루브(groove)를 중심에 놓았던 80년대의 또 다른 흑인 수퍼스타 프린스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그의 목소리는 또 남성적이면서 여성적이며, 어린이의 순수함과 어른의 성숙함을 아울렀다. 그의 발라드는 가슴을 녹여내릴 듯 호소력 있고, 빠른 노래는 숨이 막힐 듯 몰아친다. 그가 인종과 성별, 세대와 취향을 초월해 팬들을 항복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83년 모타운 레코드사 기념 무대에서 선보인 ‘Billie Jean’의 저 유명한 문워크 댄스 공연은 마이클 잭슨의 이전과 이후 시대가 영원히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선포하는 음악사의 혁명이었다. 허공을 유영하는 듯한 댄스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안무, 그리고 카리스마는 댄스와 퍼포먼스가 그저 노래의 부속품이 아니라 독립된 예술임을 보여줬다.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는 그의 몸놀림은 뮤지컬의 전설인 백인 프레드 아스테어의 우아함과 발랄함, 그리고 펑키 소울의 황제 흑인 제임스 브라운의 에너지를 한데 합쳐놓은 것이었다.
1초의 허점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무대연출로 전 세계를 일주하는 ‘콘서트 투어’를 대중음악계의 전범으로 자리 잡도록 한 게 마이클 잭슨이다. 전설이 돼버린 14분짜리 뮤직 비디오 ‘스릴러’와 ‘Beat It’, 마틴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3집 ‘Bad’로 그는 또 뮤직 비디오라는 새 미디어를 확립시켰다. 첨단 컴퓨터 그래픽 모핑 기법의 전시장이었던 ‘Black or White’ 같은 데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당대의 팝문화의 첨단과 트렌드를 모두 결합시켜 자신만의 색깔로 재탄생 시킨 위대한 창조자였다.
1994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Lisa Marie)와 결혼했지만 2년만에 이혼했다.
1996년 자신의 치료를 도운 간호사 데비 로우(Debbie Rowe)와 결혼했다. 데비 로우는 정자은행을 통해 제공받은 정자로 아들 프린스 마이클 주니어를 낳아 대리모 논란에 휩싸였다. 이 후 딸 패리스 마이클 캐더린을 낳고 1999년 이혼했다.
그 후 마이클 잭슨은 또 다른 여자에게서 두번째 아들 프린스 마이클 2세를 얻었다. 대리모를 통해 얻은 아들로 알려진 세 번째 아이의 엄마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자넷 잭슨 : 마이클 잭슨의 여동생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아홉 형제중 일곱째로 출생
1964년 형 네명과 함께 '잭슨파이브'로 활동 시작
1970년 첫 싱글 앨범 '아이 원트 유 백(I Want You Back)'이 1월 빌보드 차트 1위
1979년 음반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손잡고 발표한 '오프 더 월(Off the Wall)'로 돌풍
1982년 '빌리진(Billie Jean)' '비트 잇(Beat It)'등이 수록된 '스릴러(Thriller)'는 역사상 최다 판매 기록 수립
1983년 딱 달라붙는 검은색 스키니바지에 흰 양말. 무대 위에서 미끄러지듯 뒷걸음치는 '문워크(moonwalk)'로 대표되는 '잭슨스타일'을 선보임
1984년 펩시 광고 촬영 중 갑작스러운 화재로 2도 화상
1987년 캘리포니아 인근 1133만㎡에 놀이기구와 동물원을 갇춘 대저택 '네버랜드'를 세움(빚더미에 올라앉으면서 잭슨은 네버랜드 소유권을 2008년 자신이 일부 지분을 가진 회사인 시카모어 밸리 랜치 유한책임회사에 넘김)
1993년 11세 소년 조디 챈들러의 부모로부터 아동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함. 2330만 달러에 합의
1994년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5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결혼. 2년 만에 이혼
1996년 서울서 첫 내한 공연
1997년 간호사 데비 로와 재혼. 두병의 아이를 낳았지만 역시 2년 만에 이혼
2002년 독일 투어 당시 9개월 된 아들을 호텔발코니 밖으로 내놓고 흔드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며 '아동학대'비난
2003년 14세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네버랜드에서 경찰에 체포.
2005년 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받지만 이미지 실추
2009년 6월 25일 런던 콘서트(7월 13일)을 앞두고 미국 LA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심장마비로 사망
내게 아버지는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나는 부모나 가족의 강요 때문에 음악을 한 것은 아니다. 내안의 음악 세계가 내게 그렇게 하도록 했다. -1988년 자서전 『문워크』에서
어렸을 땐 일, 일, 일뿐이었다. -1993년 오프라 윈프리쇼에서
아버지는 나를 때렸다. 나는 아버지가 쳐다보기만 해도 무서웠다. -1993년 오프라 윈프리쇼에서
(여드름이 났을 때)아버지는 나를 놀렸다. 나는 그게 정말 싫었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으려했고 밤마다 얼굴을 씼었다. 매일 울었다. 아버지는 내가 못생겼다고 말하곤 했다. -1993년 오프라 윈프리쇼
나는 벨트로 채찍질을 했을 뿐이다. 나는 때리지는 않았다. 때릴 땐 막대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아버지 조 잭슨 2003년 BBC와 인터뷰에사
아이들이 (공연하러)가지 않겠다고 할 때면 아이들 손을 잡고 '우리는 간다. 우리는 가서 이걸 할 거다'고 말했다. -조 잭슨 2005년 AP와 인터뷰에서
(어린시절)마이클은 야구 유니폼을 입고 걸어 다니곤 했다. 하지만 야구는 하지 않았다. (잭슨가)아이들은 뒷마당에 모여 연주를 했다. -마이클 잭슨의 어린시절 이웃이었던 제프리 허트 2009년 타임지 인터뷰에서
날짜, 장소 : 2009년 7월 7일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림.
추모공연 : 스티비 원더, 라이어넬 리치, 머라이어 캐리, 얼리셔 키스 등 유명 팝스타 공연
방송 : TV와 인테넷을 통해 전 세계 생중계 되었다.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 CNN,CBS,ABC,NBC 등 16개 이상의 미 방송사들 실시간 중계. 인터넷, TV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80개 대형 극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되었다.
국내에서는 연예 전문 케이블 채널 tvN이 방송했다.
참석한 사람들 : 아카데미 수상자인 제니퍼 허드슨, 농구선수인 코비 브라이언트와 매직 존슨, 잭슨의 여자친구였던 배우 브룩 실즈가 참석해 잭슨을 배웅했다. 흑인 레코드 회사인 ‘모타운’의 설립자인 베리 고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아들인 마틴 루서 킹 3세도 슬픔을 함께 했다. 영국의 장기자랑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출연해 잭슨을 완벽하게 흉내 내 주목받았던 초등학생 새힌 자파골리도 초청받았다.
그러나 잭슨의 절친한 친구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장례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테일러는 트위터를 통해 지인에게 “나의 슬픔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2만 여명 입장
2만 석 규모의 스테이플스센터에는 장례식 입장권 추첨에 당첨된 일반인 1만7500명이 그들의 영원한 우상 잭슨을 기렸다. 이들은 입장을 위해 번쩍이는 손목 밴드를 착용했다. 160만 명 이상이 몰린 추첨 경쟁에서 당첨된 8750명은 6일 LA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1인당 2장씩 표를 받아갔다.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와 크래이그스리스트 등에서 한때 장례식 입장권이 2만달러까지 호가했지만, 해당 사이트는 광고 배너를 삭제했다.
마이클 잭슨 소장품 경매 2009년 4월 21~23일
마이클 잭슨 중앙일보 분수대,1996.10.10
마이클 잭슨이 뭐길래 중앙일보 분수대,1993.09.19
얼굴 중앙일보 분수대,2006.11.17
네버랜드의 왕 중앙일보 분수대,2009.6.29
유언장 중앙일보 분수대,20009.07.07
여운 중앙일보 분수대,2009.07.09